728x90 반응형 전체 글173 Raincouver, Latecouver Vancouver를 'Raincouver' 라고 부를 정도로 쉬지 않고 오는 빗님들의 잔치, 우기의 계절이 돌아오셨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부러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곤 했는데 밴쿠버에서 한 해, 두 해, 비를 겪다 보니 비와 함께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낭만은 저 멀리 떠나보내고 '이제 그만 좀 오지' 하는 지극히 현실적 반응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도 그런 것이, 5개월이나 지속되는 우기도 힘들건만 기후 변화 때문인지 빗방울의 줄기 마저 엄청 세져서 내가 처음 왔 올 때 우산 없이 다니던 그런 비가 아니기에 여름의 햇빛과 함께 산책하던 계절이 빨리 다시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Raincouver'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어서 'Raincouver'답게 'Raincouver.. 2020. 11. 20. 청춘 핫도그(밴쿠버 다운타운) 핫하게 찾아 온 추억 하나...청춘 핫도그 ^^ 나는 한인이 없는 도시에 사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도 한국의 많은 것들이 참 그립다. 더구나 밴쿠버는 한인 타운이 잘 형성되어 있어 생활에 불편할 게 크게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중에서도 먹거리는 한국에 오래 살다가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특히나 길거리 음식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1인이었다. 밥먹기 귀찮을 땐 떡볶기 한 접시가 나의 한끼가 되어줬고 어묵과 튀김이 더해지면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었다. 츄리닝에 슬리퍼 신고 집 앞에 나가서 언제든 먹었던 먹거리들을 차를 타고 가야하는 수고로움을 겪다보니,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 더 찾게 되는 심리적 이유도 있지 않나 짐작해 본다. 그래서 밴쿠버에 막 왔을 때는 먼.. 2020. 11. 15. 그날의 기억법 그날, 유난히 하늘은 높아 보였고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한 여행객처럼 하늘 길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길의 끝에서 새로운 공기를 만나 오랜 시간 쌓아둔 모든 숨들을 방출하고서야 비로소 내 발길이 멈춘 곳을 보았다. 내가 낯설은 건지, 처음 만난 세계가 나를 낯설어 하는 건지, 그날의 분위기는 공기마저 나를 낯설게 했다. 아마 어색한 모습을 티내기 싫어서 낯설음이라는 단어로 숨기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리라...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들이 빠져 나가듯 그날은 아주 미세하게 사라져 가고 다른 얼굴의 새로운 시간을 대면하면서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변해갈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왔는지, 어떻게 해야 하 는지가 인지가 되었다. 시차적응이 끝나고 몽롱하던 정신이 돌아와서야 내 남은 인.. 2020. 11. 12. 웃음으로 기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웃음이 주는 에너지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웃음이 없었다면 물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 처럼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그래서 직업적으로 사람들을 웃겨주는 희극인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달란트가 있음에 부럽다. 2008년, 내가 정말 힘든 일로 한달 가까이 칩거하며 나의 일상이 무너지고 감정들조차 말라가던 암흑기가 있었다. 너무 힘드니까 새벽기도를 나가 하나님께 살아갈 힘을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던 때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다녀온 후, 그날 따라 집 안의 적막함이 싫어서 한 동안 켜지 않던 TV를 켜고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 연히 어떤 개그 프로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한 코너의 이름이 '조선왕조부록' 이었다. '조선왕조부록' 코너 이름도 웃기지만 거기 나오는 여자 개그우먼 그녀... 그 때 막.. 2020. 11. 6. 시골 소녀, 도시 여자를 꿈꾸다. 지금은 넓디 넓은 캐나다 땅에 살고 있지만 나는 자랑스런 한국의 시골 촌뜨기(^^;) 출신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오빠가 6학년, 우리 가족은 내가 꿈에 그리던 도회지로 이사를 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주'가 맞을 것이다. 1980년 무렵, 대청댐이 들어온다는 반박 불가의 사유로 거주민들은 거부할 권리도 없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 다 . 대부분의 집들은 살던 곳과 멀지 않은 곳, 새로 형성된 부락으로 들어갔지만 자식들의 교육열이 나름 높았던 우리 부모님은 그 참에 몇해 전, 큰 딸(당시 중3)을 유학시켜 놓은 대전을 선택해 거국적 이주를 하셨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엄마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한달에 한 번 정도, 언니를 보기 위해 대전에 나갔었는데 그때마다 철부지 '나'는 대전.. 2020. 11. 2. 2020년, 여름의 어느 하루 어느 해 보다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2020년, 코비드 19와의 동행. 해마다 등장했던 바이러스들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종식될거라 여겼던 코비드 19라 불리는 바이러스. 일 년 여 가까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여 많은 것을 잃게 하고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직장도, 학교도, 교회도, 모임도, 여행도 우리의 루틴들이 깨지고 멈춰버렸다. 어김없이 월요일은 다시 왔고 주일이 지나갔지만 우리가 평상시 누렸던 하루하루가 아니다. 반갑게 인사 나누던 이웃들이 코비드 감염환자가 아닌지 서로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고 거기다 코비드의 원인을 두고 특정 인종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다소 몰지각한 사람들도 보였다. 모두가 피해자들인데 일방 통행만 되는 분노표출자들은 코비드를 핑계로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고 .. 2020. 10. 30.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9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