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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Life/인생시계

라떼는 말이야...

by Latreia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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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그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라떼는(나때는) 말이야..."
이 말도 한국어의 언어유희라고 해야 할까? 난 요즘 이 말이 참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처음에 들었을 땐 "참 기발하다. 신선한대..." 라고 재밌게만 생각했는데 점점 왠지 모를 찔림이 생긴다.
글쎄...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런건지,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들, 즉 시쳇말로 참 꼰대스런 사람들을 겨냥해서 희화한 말 같기 때문이다.
"꼰대"는 고집스럽고 자기 말만 옳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소통이 안 되는 불통인 어른을 일컫는 말이지 않는가.
나는 '꼰대'라는 단어와 영원히 무관할 거라 여겼는데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무겁고 불편히 느껴진다는 건 나도 그런 부류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꼰대라기 보다는 그저 나이가 들어감에서 오는 나이듦의 현상일까? 그러면 좋겠다만...

지금을 사는 소위 중년이라 불리우는 보통의 우리들이라면 누구나 지나 왔어야 할 유년기, 학창시절, 직장생활, 결혼 등의 경험적 시간들을 건너 현재에 있을 것이다.
멀고도 먼 길을 먼저 와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그런지,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어봤기에 노파심에 그런지, 우리 뒤를 따라오는 십대, 이십대, 삼십대의 그들에게 우리의 옛 시간을 표본삼아서, 넘어지지 않고 허투르지 않은 인생 길을 안내하고 싶어하는 충동이 올라온다.
뒤에 오는 그들이 이왕이면 시간을 정갈하게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런데 갑자기, 이런 나의 생각들이 모여 결국 꼰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마음이 차오른다.
혹시...나도 "라떼는 말이야"로 자꾸 나의 앞선 경험들을 앞세워서 조언, 관심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옳다고 은근 강요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받아들이는 상대가 어땠을지 모르니 "라떼는 말이야"는 참으로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라떼! 를 대물림하고 있지는 않는가?


가까운 예로, 대학생인 우리 조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젊은 혈기와의 대화가 신이 나서 잘 듣다가도 내가 그 시절 고민했던 일들을 조카가 하고 있으면 전형적인 충고를 해주고 있는 나를 본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인생의 조언이 혹시 그저 '잔소리'로 남아 소모적인 시간만 된 건 아니었는지...
조카에게 때마다 "너무 뻔한 얘기만 하지?" 라고 물어보는 것도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

우리가 꼰대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라떼는 말이야"의 그 경계를 잘 지켜야 하리라.
나의 자랑이 되어서도 안 되고
나의 실패담이 늘어져서도 안 되고
상대를 향한 지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어야 한다.

계속...라떼들은 몰려온다.

 

가끔은 넘어져 보기도 하고, 헤매보기도 하고, 넋놓고 쉬어보기도 하는 우리 뒤의 그들을 응원해주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서로에게 시너지가 됨을 믿는다.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그게 정답이다.
우리는 나이가 어리든지, 많던지, 각자의 인생이 있다.
거기에 살아 온 경험이 쌓이고 쌓여 자기만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 히스토리가 꼰대스럽지 않은 "라떼는 말이야"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좀 더 존중해야 하리라.

세대를 막론하고 아무나 "라떼는 말이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라떼는 말이야"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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