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at Life/인생시계

우리들의 작은 영웅은 어떤 얼굴로 남아 있을까?

Latreia 2023. 3.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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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히어로는?

 
 
오늘 문득, 한국 뉴스를 보다가 요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어디서 나오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시간, 내가 입시의 늪으로 들어가 있던 어느 날, 나와 또래의 고3 남학생이 MBC뉴스에 나와 인터뷰하는 걸 우연히 보았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교육부가 우리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해서 법원에 소장을 냈다는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 학력고사 입시 지옥을 경험해 본 세대라면 "야간 자율 학습"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인 듯 강제가 아닌 '자율'이라는 학습. 
학교가 야간 자습을 의무화함으로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자정이 되서야 집으로 귀가하던 시스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라 여기고 당연함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제도에 반기를 든, 누구나 Yes, 라고 할 때 No라고 소리를 냈던 그 남학생의 소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우리의 권리를 생각 못 했는가?, 나는 왜 저런 자신감이 없을까? 라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야무지게 전하는 남학생이 우리들의 '대변인',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그 남학생의 소신은 기성 세대를 살짝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그 이후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또 기대를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남학생이 소리를 낸  '행복 추구권 침해' 보다는 대중 앞에 그것을 갖고 나온 그 남학생의 용기가 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그 학생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름도, 학교도, 사는 지역도 기억 나는 건 없는데 고등학생이 교육부를 상대로 소장을 낸 건 너무 흔치 않은 일이기에 유명한 사람이 됐다면 분명 한 번쯤 소싯적 역사적 사건을 언급할 것도 같아서 알아봤을 것이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성장했을까?
아니면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며 소시민적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방송과 언론에 보이는 법조계나 정치계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 중 그 남학생이 있을까?
그래서 변두리 언저리의 약한 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과 기대감을 갖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은  '작은 영웅'이 나처럼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든, 법조계, 사회 운동가, 정치 등 그 어떤 영역에서 일하든 십 대 시절 우리를 대변하던 그 소신 있는 모습이 변질만 안 됐길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도 어엿한 한 가족의 가장일 것이고 개인의 삶이 있을 터이니 살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지키고 있던 방향들이 바뀔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 십 대 시절 '작은 영웅'에 대한 나의 욕실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 운동가들이나 60-70년대의 독재 정권에 대한 반기를 든 학생들이나 80-90년대 불었던 민주화 운동을 위해 앞장선 열사들이 나오는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정치, 사회를 향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시대를 막론하고 중심에서 변방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인물은 계속 있을 것이다. 혹자들은 그들을 시대의 영웅이라고도 하면서 추앙하기도 한다. 
 
추앙받고 존경받는 것 좋다. 문제는 교만해지기 딱 좋은 환경과 개인적 입신양명의 야욕이 생기며  '영웅심'으로 해결책을 찾고 급기야 주장만 앞서는 이기심이 드러나는 거다.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중 앞에서 대중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면 다 찾아올 수 있는 '검은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 그 유혹을 이겨내고 뿌리치는 건 당사자의 선택이고 지혜이다. 내가 소망하는 건 누가 되었건 간에 '약자를 위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겠다'는 등 건실한 취지로 나와 '영웅'의 진면목은 내팽겨치고 '영웅놀이'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되지 않길 바란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책을 읽고 영화로도 보았다. 그 작품에서 아직도 내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인물은 주인공 엄석대와 한석태가 아니라 주인공들을 가르쳤던 김선생이다. 
내용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1960년대 말 국민학교 6학년인 한병태는 시골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엄석대라는 급장 아이가 그 반을 장악하고 있음을 안다. 한석태는 엄석대의 횡포를 담임 선생님께 알림으로써 엄석대의 억압과 횡포에 맞서려고 하지만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러자 한병태는 살아남기 위해 엄석대에게 굴복하고, 이후 그의 특혜 속에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인 김선생이 부임한 후 엄석대의 성적 조작 사실을 밝혀낸다. 엄석대는 선생에게 잘 보이면 덮일 줄 알았지만 김 선생은 뒤를 봐줄 생각이 없는 민주적, 합리적 교육 철학을 가진 사람인지라 엄석대는 교실을 뛰쳐나가 그 길로 사라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우의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골 국민학교의 한 교실은 비민주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며, 그 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엄석대는 영락없는 독재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새로운 권력이 생겨날 때마다 거기에 빌붙는 아이들의 행동은 당시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삶을, 석대의 횡포에 항거하지만 결국 현실에 순응하는 한병태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새로 온 선생님은 석대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존재이지만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재 권력의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김선생이 장례식장에  국회의원이 되어서 나타나는데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권력과 부의 배에 올라탄 부패한 정치인의 얼굴이었다. 바로 이 부분이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용기 있게, 약자를 대변해서 소리를 내주었던 김선생도 결국 권력의 맛에 굴복하는 그런 부류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행복 추구권을 침해받았다'고 소신 있는 발언을 했던 내 고등학교 시절 우리들의 작은 영웅은 과연 어떤 얼굴로 남아 있을까? 시대의 흐름에 자연스리 편승한 김선생처럼 그렇게 변질 되지는 않았겠지?  
사뭇 궁금하지만 그 남학생이 자신의 가치관을 무너뜨리지 않고, 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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