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법
그날, 유난히 하늘은 높아 보였고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한 여행객처럼 하늘 길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길의 끝에서 새로운 공기를 만나 오랜 시간 쌓아둔 모든 숨들을 방출하고서야 비로소 내 발길이 멈춘 곳을
보았다.
내가 낯설은 건지, 처음 만난 세계가 나를 낯설어 하는 건지, 그날의 분위기는 공기마저 나를 낯설게 했다.
아마 어색한 모습을 티내기 싫어서 낯설음이라는 단어로 숨기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리라...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들이 빠져 나가듯 그날은 아주 미세하게 사라져 가고
다른 얼굴의 새로운 시간을 대면하면서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변해갈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왔는지, 어떻게 해야 하
는지가 인지가 되었다.
시차적응이 끝나고 몽롱하던 정신이 돌아와서야 내 남은 인생 여행 길의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 하려고 밴쿠버
땅에 안착했음이 실감난 것일 게다.
바로 그날, 2011년 5월 4일.
호기심 많은 방랑자로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나에게는 미지의 땅과 같았던 밴쿠버와의 첫 만남을 성사시킨 역사적 날이자 시작점이다. 가끔, 그날의 낯설은 공기가 떠오르면 이유 없는 미소와 설레임이 번진다. 그건, 내가 이 곳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횟수로 10년, 짧다고 짧고 길다면 길은 밴쿠버에서의 생활, 10년이면 밴쿠버에 대해서 최적화된 삶이 됐어야 하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불안감과 안정감 없는 미완의 기분이 찾아오면 그날, 2011년 5월 4일의 내 감정의 기억들을
소환하곤 한다.
밴쿠버라는 낯선 도시에서의 첫 날, 첫 만남의 풋풋함은, 여전히 이 곳에서 안녕히 지내고 있음을 내가 나에게 알려주는
사인과 같아서... 그날의 기억이 참 소중하다. ^^